숙주나물읠 유효성분과 효과 | |||
---|---|---|---|
-녹두, 뛰어난 해독력과 식물중 Vita C 함유 최고..항암식품으로 이상적 숙주나물(녹두 콩나물)에 대하여란 하단의 자료중에 보면 숙주나물은 콩나물보다 영양가가 풍부하며, 녹두로 먹을 때보다 상당한 유효성분이 새롭게 조성되어 비타민A는 2배, 비타민B는 30배, 비타민C는 40배 이상 증가한다. 그 외에도 숙주나물 100g에는 비타민C가 167mg과 칼슘이 130mg이나 들어있다. 숙주나물은 부자, 초오같은 맹독성 약물을 잘못 복행했을 경우 독을 풀어주는 등 해열 해독작용에 뛰어난 신비한 가능을 한다. 육류나 인스탄트식품의 섭취에서 쌓인 독소를 해소하는데 있어 대단히 좋은 식재료이다. 소화성이 좋고 해열, 고혈압, 숙취에 효과적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영영과잉의 불균형식단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훌륭한 건강발아 채소이다. 보통 봄에 채취하는 산채나 나물등 새순에는 소위 기적의 물질이라 불리는 셀레늄이 4배나 많고 각종 비타민,미네랄등 생리활성 물질이 유난히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밀순,보리순으로 암등 불난치병을 고친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 국내 모든 식물중 비타민C 함량이 최고로 귤의 11배이상이며 철분의 함량이 시금치의 2배이상인 맛있는 곡식인 녹두가 발아, 숙주나물이 될 경우에는 비타민C가 40배, 비타민B가 20배, 비타민A는 두배나 증가한다고 합니다. 녹즙요법이 거슨 박사의 식이요법에 의할 때 핵심이 비타민,미네랄등 생리활성물질의 섭취에 있다고 한다면 녹두의 이용은 꼭 해야할 것으로 봅니다. 한약의 약성을 죽인다거나 농약음독시 녹두를 갈아 먹여 살리는등 뛰어난 해독력도 역시 녹두가 함유한 비타민등 생리활성작용으로 보고자 하며 녹두는 물에 불려 살짝 익혀 먹어도 되고 잡곡죽으로 잡곡밥으로 전(빈대떡)으로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투병용으로 발아 녹두나 어느 정도 자란 숙주나물로 키워 즙을 내서 여타 과채즙과 함께 먹고 충분히 키운 것은 야채샐러드로 먹는 것을 선택해 볼 필요가 큽니다. 아래 자료를 보는 분은 왜 숙주나물이 되면 비타민C가 40배 증가하는데 숙주 100g에는 비타민C가 167mg밖에 안되는가 의아해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단의 표에 나오는 녹두에 함유한 비타민C는 수분이 없는 곡물상태의 녹두로 이해하면 되고 숙주나물은 녹두가 물에 불어 나고 콩나물처럼 긴꼬리 부분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대략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다 키운 숙주나물상태에서도 비타민C가 100그램당 167그램이라면 우리가 잘먹는 키위38, 귤35밀리그램과 비교시 얼마나 많이 함유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으로 봅니다. 생각컨데 새순의 이치를 생각해 보면 숙주나물이 될 때 까지 다 자라게 하는 것보다 덜자란 상태일 때일 때 즙,생식,샐러드등으로 이용함이 가장 좋다는 생각입니다. 이 때는 날로 먹어도 싱그럽고 고소한 맛이 나는게 아주 맛있습니다. 다만 녹두의 이용은 끓는 물에 펄펄 끓여서는 비타C가 대부분 파괴되므로 가루로 만들어 하루 한끼 잡곡죽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영양분석자료상의 녹두 비타C 함유량에는 시비꺼리가 있지만 여러자료를 확인해 보고 녹두가 지닌 높은 해독력을 생각해 보면 비타C가 아니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는 클레너 박사가 연탄가스,농약중독,뱀독중독을 해독하여 생명을 살려 냈다는 것과 상통하여 그대로 신뢰하고자 합니다. 요즘에는 피부미용에도 녹두를 사용하는데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숙주나물에 대하여 숙주나물의 역사 숙주나물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빠르다. 중국에서는 12세기 전반에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이 책을 보면, “숙주나물이 마을 시장에서 팔렸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숙주나물에 관한 중국의 기록이다. 그러다가 14세기에 들면 ‘거가필요사류전집(居家必要事類全集)’에 보면 숙주나물의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즉 “숙주나물을 끓인 물에 넣어 삶은 다음 생강, 식초, 기름, 소금을 넣어 묻혀서 먹는다”는 것인데, 한국하고 그 기본 조리방법은 같으나 양념을 넣는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 (1670년 경)이라는 책에「잡채(雜菜)」라고 하는 요리를 소개하면서 “숙주나물이 사용된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그러나 신숙주와 관계되어 이름이 지어질 정도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미 그가 살던 15세기 중엽 이전에 숙주나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숙주나물의 기록은 17세기에 나오는데, 대표적인 책인 ‘대화본초(大和本草)’ (1708년)가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면, ‘녹두’ 항목에 “녹두를 물에 넣어 흰 싹을 나오게 한 다음 이를 잘라 데쳐서 두유와 식초를 넣어 묻힌 후 먹는다고 되어 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맛이 없었을까 공연히 생목이 탈 지경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숙주나물을 먹기 시작한 시대별 순서는 역시 중국, 한국, 일본 순이라고 할 수 있다. 숙주나물의 역사만 보더라도, 일본은 문화적인 면에서는 언제나 꼴찌였음을 알 수 있다. 숙주나물의 일본 전래는 임진왜란시 일본 병사들에 의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도자기만이 그들의 주요 약탈 대상이 아니라, 그 많은 병사들이 조선에 와서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먹고 지내면서 조선의 음식에 동화되었던 것이고, 돌아갈 때 녹두나물 재배법을 배워서 녹두를 가져다가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 온 숙주나물은 결국 일본에까지 전해지게 되는데, 이러한 숙주나물의 역사는 발명과 지식의 전래, 책들의 교류, 인간의 왕래, 전쟁 등 여러 사실들이 어울려져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좋든 나쁘든 한중일 삼국의 운명적 만남이 숙주나물 속에 그대로 배어 있는 것이다. 즉 그 맛이 차이가 있던 없던 간에 콩나물과는 달리 숙주나물은 일찍부터 한중일 삼국이 공동으로 먹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자문화권 내지 동아시아 문화권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한 운명적 만남의 고귀함을 일본인만이 모르고 있는 것은, 역시 문화적 소양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 여길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숙주나물의 어원 조선시대에 콩을 기른 것이라 하여 콩기름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녹두의 싹을 내어 먹는 것은 녹두나물 또는 녹두기름이라 불러야 하지만 숙주나물이라고 부른다. 이는 조선시대 세조가 좌의정 신숙주에게 녹두 열매의 수입을 권장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1460년 경, 세조는 기근이 들어 배고파하는 백성들을 위해 빨리 성장하고 쉽게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서 영양이 풍부한 녹두 열매의 수입을 신숙주에게 명했다. 백성들의 식량으로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힘쓴 신숙주의 업적이 부각될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신숙주(申叔舟)와 관련이 있는 일에서 유래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데 호를 보한재(保閒齋), 희현당(希賢堂)이라 한 신숙주(1417-1475)는 1439년 문과(文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집현전(集賢殿)의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그는 젊은 날에 장서각(藏書閣)에 들어가서 평소에 보지 못한 책을 열심히 읽고 동료들 대신 숙직을 하면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기가 일수였다. 세종은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어의(御衣)를 하사하며 칭찬했다. 그는 세종으로부터 더욱 극진한 총애를 받아 일본 대마도와의 무역협정인 계해조약(癸亥條約)을 체결하는 등 국가의 중대한 일들을 맡아 성실히 수행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는 그의 공이 가장 컸는데, 요동(遼東)에 귀양온 명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 황찬(黃瓚)을 찾아 13번이나 요동으로 왕래하여 음운(音韻)에 관한 것을 의논한 것으로도 알수 있다. 세조가 즉위하기 전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를 간 일이 있는데 이 때 그는 서장관(書狀官)으로 따라 갔었다. 뒷날 세조와 각별한 처지가 된 개인적 친분은 이 때 맺어진 것이다. 과연 세조가 어린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았을 때는 의리를 저버리고 이에 가담했으며,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성삼문(成三問)과도 멀어지게 되었고 성삼문이 단종을 도로 임금으로 모시려다 실패하여 모진 고문을 당하는 마당에서 모욕도 당하였다. 의리와 지조를 목숨같이 여기던 조선조 사회에서 이러한 보한재의 변절은 용납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변절이 여름철에 가장 잘 쉬는 나물인 녹두나물과 그 성질이 같다고 하여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다른 이야기로 세조에게서 극진한 총애를 받은 그가 평소에 녹두나물을 즐겨하여 밥상에 이 나물 반찬이 끊일 때가 없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조가 앞으로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라고 명령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으로는 숙주나물이라는 명칭의 역사를 보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2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즉 “숙주나물은 신숙주(申叔舟)가 집현전 동료였던 사육신을 배반하고 세조(1455-1468)의 공신이 되었으며, 죄없는 남이(南怡)장군을 죽이고 거듭 공신의 호를 받은 사람이 되자 서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성(姓) 자체를 박탈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 이용기(李用基)의 ‘조선무쌍요리제법(朝鮮無雙料理製法) ’에서는 “숙주라는 것은 우리나라 세조 임금 때 신숙주가 여섯 신하를 고변(告變)하여 죽인 고로 이 나물을 숙주라 하였다. 이 나물을 만두속으로 넣을 적에 짓이겨 넣는 고로 신숙주를 이 나물 찧듯 하자고 하여서 숙주라 하였으니, 이 사람이 나라를 위하여 그리하였다 하나 어찌 사람을 죽이고 영화를 구할 것인가? 결코 성인군자는 못 된다”고 하였다. 홍기문(洪起文)은 “숙주나물이 하도 잘 쉬기 때문에, 신숙주의 변절을 숙주나물에 빗대어 숙주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는 것은 신숙주의 변절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담겨있다는 설도 있다. 조선 초기 몸이 약한 문종이 죽자 단종이 열세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숙부였던 세조는 어린 조카를 핍박하여 왕권을 빼앗고 단종은 영월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 분노한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여섯 신하는 단종 복위을 위한 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이들의 음모는 발각되어 이들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당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사람들은 집현전 학사출신이 많았다. 그런데 신숙주는 집현전 출신이면서도 세조에게 협력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사육신들은 모두 죽었는데도 끝까지 살아남아 수양대군과 함께 영화를 누리려는 남편의 처신을 참지 못하고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도 한다. 백성들은 세종대왕의 많은 총애를 받았던 집현전 출신인 신숙주가 세조의 편을 들자 신의를 저버린 그를 미워하여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숙주나물은 다른 나물에 비하여 쉽게 변한다. 여름철에는 나물을 무치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쉬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신의를 저버리고 세조에게 가버린 신숙주와 같다고 하여 이 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른 것이다. 그리고 숙주나물은 만두소의 중요한 재료가 된다. 만두소는 두부, 채소를 짓이겨 함께 섞어서 만들게 된다. 숙주나물도 당연히 짓이겨지게 되는데, 마치 신숙주를 짓이기듯 숙주나물을 짓이겼다고 한다. 이 나물을 만두소로 넣은 때에 짓이겨 넣은 고로, 신숙주를 나물 찧듯하여 숙주라 하였으니…”라는 대목이 있어‘변절자 신숙주’의 의미를 더 부각시키기도 한다. 숙주나물의 식용 숙주나물은 녹두(綠豆)의 싹을 내어 먹는 나물이다. 숙주나물은 콩나물과는 달리 처음부터 약용이 아닌 식용으로 쓰였던 중요한 음식이었다. 이러한 숙주나물에 대해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녹두나물’이라 하고, 「만기요람(萬機要覽) 」에서는 ‘녹두장음(菉豆長音)’이라고 불리우는 등 여러 명칭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콩나물 보다는 숙주나물을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생일상이나 잔칫상에는 반드시 끼게 되는 생소한 반찬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 입맛에는 숙주나물보다는 콩나물이 제격인지 그리 잘 먹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영양학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좋은 반찬이고, 또한 부드러워서 노인들이 좋아하는 나물이기도 하다. 더구나 나물의 역사를 보면 숙주나물이 콩나물보다 훨씬 선배라는 사실에서 숙주나물을 푸대접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만 그렇지 아직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콩나물보다는 숙주나물을 더 좋아하고 즐겨 먹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조금이라도 큰 것이 좋았던 것인지 숙주나물보다는 콩나물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라면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산림경제’ 와 ‘한정록(閑情錄)’ 등에 보면, 숙주나물에 대한 조리법을 설명해 여기에 녹두를 펴고 천으로 가린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물을 뿌려서 싹의 길이가 3센티 정도 되기를 기다린다. 두피를 씻어 내고 끓는 물에 데쳐 생강, 초, 참기름, 소금 등으로 무쳐서 먹는다고 하였다. 숙주나물의 명칭 숙주나물은 콩나물과 흡사하게 생겼지만, 콩을 키워 기르는 콩나물과는 달리 녹두를 길러 얻는 나물이다. 요즈음은 냉장고에 보관해두니 그나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숙주나물은 그때그때 조리하지 않으면 시들거나 변질이 되어 먹질 못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쉬이 삭아버리는 숙주나물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한 임금에게 충의를 바치지 못한 신숙주의 의리 없음을 두고두고 욕하였다고 한다. 다른나라들은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구분지어 명칭하지 않고 일본은 ‘모에’ 중국은 ‘두아’ ‘두아채’ 미국은 ‘스프라우트’라는 싹으로 통칭한다. 숙주나물의 재배 환경적인 대기나 토양, 수질오염이 거의 없었던 옛날에는 원두의 내성이 강했기 때문에 자연적인 전통방법만으로도 물만 이용해서 청정 숙주나물을 재배 할 수 있었지만 옛날에 비해 환경적인 오염으로 특별한 재배방법 없이는 숙주나물을 물로만 재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숙주나물은 특이하게 열대성질이어서 콩나물과는 달리 상당히 높은 온도의 재배조건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이는 썩음병의 원인체인 부패균주 곰팡이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25℃내외의 온난 다습한 최적의 기생적응 조건이기 때문에 부패위험도가 대단히 높다. 숙주나물의 성질이 워낙 예민하고 까다로운만큼 농약을 비롯한 유해약품에 의존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크다. 심하게 표현해서 농약에 버무리는 나물이라고도 일컫는다. 콩나물에 비해 병도 10배 이상하고 무농약 재배도 10배 이상 어렵다. 일단 부패가 진행되면 콩나물이 문제되는 부분만 썩는 것과는 달리 숙주나물은 아주 빨리 부패가 진행되어 재배사 전체 숙주나물이 썩어버린다. 화학 합성 첨가제 없이 재배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1992년부터 시행했던 농산물 품질인증 대상품목에서조차 제외되었던 숙주나물이다. 오랜 경험과 축적된 고도의 기술과 세심한 정성이 있어야만 고품질의 무농약 숙주나물을 재배할 수 있다. 숙주나물의 유효성분, 효과 숙주나물은 콩나물보다 영양가가 풍부하며, 녹두로 먹을 때보다 상당한 유효성분이 새롭게 조성되어 비타민A는 2배, 비타민B는 30배, 비타민C는 40배 이상 증가한다. 그 외에도 숙주나물 100g에는 비타민C가 167mg과 칼슘이 130mg이나 들어있다. 숙주나물은 부자, 초오드같은 맹독성 약물을 잘못 복행했을 경우 독을 풀어주는 등 해열 해독작용에 뛰어난 신비한 가능을 한다. 육류나 인스탄트식품의 섭취에서 쌓인 독소를 해소하는데 있어 대단히 좋은 식재료이다. 소화성이 좋고 해열, 고혈압, 숙취에 효과적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영영과잉의 불균형식단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훌륭한 건강발아 채소이다 |
|||
아이디 | star2021 | 작성일 | 2011-10-13 |
조회수 | 22576 | 추천수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