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과 수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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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조금 넘었을까?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하나였던 '호기심천국' 제작팀에서 필자가 근무하는 실험실을 찾았었다. 호기심을 풀어줄 주제는 '부적'에 관한 것이었는데, 호랑이 같은 맹수를 쫓는 부적의 힘이 주술적인 힘인지, 부적에 글자를 쓸때 사용되는 수은화합물인 경면주사(朱砂)에서 유래하는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따라서 본 실험실에 의뢰를 부탁한 내용은 부적에 함유된 수은의 함량을 측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종이로 되어있는 부적을 가로, 세로 1mm 간격으로 잘라낸 다음, 여러 가지 산으로 녹여 실험하느라 필자의 바지에는 셀 수 없는 구멍이 나기도 했다. 뒤이어 과천 서울대공원의 호랑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부적이 들어간 닭고기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부적중의 수은 함량이 높기도 했지만, 호랑이가 도망간 까닭은 다른 데 있다고 본다. 부적에 글씨를 쓸때 경면주사를 빨간 기름에 개서 쓰는데, 이 기름의 냄새가 정말 보통이 아니다. 아마 사람보다 몇 백배 냄새를 잘 맡는 호랑이에게 이 지독한 냄새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한의학에서 수은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용도로 쓰여 왔다. 수은은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있는데, 한방에서는 그 중에 '경분'이라는 이름으로 제일염화수은(Hg2Cl2)을, 앞에도 나온 '경면주사'라는 이름으로 유화수은(HgS)을 사용해 왔다. 옛날에는 매독이 왕실에 공공연하게 나돌았지만, 매독의 치료에 마땅한 항생제가 없던 시절이라 강한 독성을 가진 수은화합물이 사용되었었다. 그 외에도 경면주사는 정신을 진정시키고 가슴이 두근거릴 때 수면장애, 건망증, 가벼운 간질, 정신병 등에 사용되어 왔다. 물론 현재는 수은의 신장 독성 등이 강하기 때문에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민간요법에 가까운 것으로 경면주사를 돼지염통에 넣고 쪄서 두통이나 가슴두근거림에 쓰기도 하는데, 필자도 몇 번 먹어본 기억이 있다. 참고로 수은은 피부 미백효과를 가지고 있어 과거, 화장품에 사용된 적도 있었으나 체내에 축적될 우려가 있어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최혁재·예제과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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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6-05 | 조회수 | 1332 |